세월이 흐를수록 분야가 다양성과 전문화를 요구하는 직업인 디자이너. 예전에는 화이트칼라 직업으로 많은 예비 취업 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유망 직업이기도 했다. 아트 백에 청바지, 세련된 코디와 멋진 스타일 옷차림으로 현장과 디자인실을 누비는 폼 나는 모습을 상상하며 부러움과 갈망으로 무작정 진로를 선택했던 이들이 많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실상, 실무에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살며시 물어보면 그 어느 누구도 화려함에 만족하고 흡족해 하면서 현재의 디자이너의 라이프스타일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극소수 일 것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사우나 하고 깔끔한 옷차림에 나설 때면 그런대로 봐줄만 하지만, 며칠 동안 디자인과 전쟁을 치르고 나서는 날이라면, 거의 산거지 중에 산거지라 할 정도로 부스스한 헤어스타일, 삐죽삐죽 들쭉날쭉 섬섬한 수염, 담배냄새 깊게 밴 외투, 꼬질꼬질하고 볼 상 사나운 모습 그 자체이고 이런 현상은 남녀를 불분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라 말하지만 나는 디자인의 명제를 ‘무(無)’라고 말하고 싶다. 무에서 유의 창조가 아니라, 무에서 무를 창조하는 고난위도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랜 시간을 수련을 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로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존재하기에 ‘무(無)‘라고 답을 하고 싶은 까닭이다.
오늘도 나는 그 ‘무(無)’란 답을 찾기 위해 긴 겨울밤을 지새우고 있다. 몇 일째 계속......, 서른아홉 번째 생일이지만 가족들과 미역국 한 그릇 놓인 따뜻한 저녁시간을 보내지도 못한 채.......,이렇게 시간이 길어지면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나의 존재가 지워지진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디자이너! 그들이 1년에 밤을 지새우는 날은 200여일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오늘도 이 땅 어느 곳에서는 나처럼 향이 깊은 커피나 맑은 얼음 물 한 잔! 그린 색이 아름다운 녹차 한 잔을 옆에 두고 머리를 긁적이는 디자이너들의 생존전쟁이 한창 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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