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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숙제 벼락치기는 불변의 진리?

Life Essay/Life Story

by 김현욱 a.k.a. 마루 2008. 2. 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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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날짜와 날씨 내가 하느님, 과제물은 하룻밤에 뚝딱 뚝딱!

설날 연휴를 지나면 곧 있을 개학을 앞두고 우리 집 아이들이 부산을 떨기 시작합니다.
물끄러미 허둥대는 아이들의 손을 따라 작은 반상 위를 쳐다보니 한 녀석은 밀린 일기를 적느라 끙끙대며 놀란 망아지 눈으로 연신 벽에 걸린 달력과 일기장을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큰 녀석은 방학동안 실천했던 활동보고 차트를 만든다고 오리고 붙이고 온 거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아 발 디딜 틈이 없는 그 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말썽쟁이 막내둥이 때문에 두 누나들의 가슴은 못내 안절부절 초긴장 상태에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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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허둥대는 모습을 바라보니 문뜩 이런 생각이 스치더군요. 자녀를 둔 부모치고 아이들 앞에서 “아빠, 엄마는 방학숙제 절대로 미루지 않고 꼬박꼬박 했노라!” 당당히 목청을 높일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을 말입니다.

지금에 와서 어린 시절 방학숙제와 얽힌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랬던 것 같습니다.
방학을 시작함과 책가방과는 일단 절교모드로 들어갑니다. 긴긴 겨울방학 꽁꽁 언 마을 앞   개울에서 썰매타기에 바쁜 나날 이였고 친구들과 산과 들 그리고 보리밭 누비며 총싸움, 칼싸움에 정신 팔려 날마다 적어야 할 일기마저 뒷전 이였던 것은 당연지사였지요.

하루 이틀 미루고 미루다 개학날을 하루 이틀 앞두고는 발등에 불이 떨어집니다. 개학 날 선생님께 혼나지 않으려고 초롱불 밝혀두고 뻔히 들통 날걸 알면서도 밀린 일기장 적느라고 밤을 지새운 기억이 아른아른 되살아납니다. 잊혀 질 순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날짜는 달력보고 요일과 맞춘다 하더라도 정말 난감했던 것은 날씨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아 날짜별 기상을 확인할 방법도 없었으니 대충 통밥으로 ‘맑음’ 아니면 ‘흐림’ 그리고 중간 중간 ‘비 또는 눈’도 하느님이 되어 거침없이  뿌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적어가다 가다 지치면 중간 중간 하루 이틀 건너뛰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개학 날, 교탁위에 올려놓은 우리들의 방학숙제 및 일기는 날짜마다 날씨가 제각각 다 달라 모두 다른 나라에 살다가 온 듯 웃지 못 할 해프닝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기장을 꼼꼼히 살피시는 선생님을 가슴 졸이며 바라보다가 눈이라도 마주 칠 때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씨 좋은 우리의 선생님은 벼락치기 일기장과 방학숙제임을 알면서도 미소를 한 번 지어주며 넘어가는 센스를 보여 주시곤 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도 인정하는 공식 거짓말이 방학숙제 일기장이 아니었나 싶네요. 하지만 이것마저도 안하고 빈 일기장 제출하면 그 날은 장딴지, 손바닥 붉게 타오르는 시련의 날이기도 했었다는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납니다.

아이들이 넌지시 물어 옵니다. "아빠, 엄마는 어릴 때 방학숙제 어떻게 했어요?"
이 뻔한 질문에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요? 하지만 능청스럽게도 얼굴색 변하지 않고 겸연쩍은 모습을 하며 헛기침 한 번과 함께 이렇게 말하고 맙니다.
“아빠,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일기는 미루지 않았고 꼬박 꼬박 썼단다.” 라고 말입니다.

나의 아버지 세대에서도, 그리고 나의 세대에서도 그러했듯이 이제는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 이르러서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뻔한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신 입가에 피어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옆에 있던 아내와 함께 파안대소 하고 말았습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며 벼락치기 방학숙제를 하는 사랑스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왠지 오랜 세월 추억 속에 묻어 놓았던 내 어린 시절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정겨움과 더불어 가슴 뭉클해 옴을 느끼게 됩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서 강산이 수십 번 바뀌어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은 것은 아마도 벼락치기 방학숙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머지않아 우리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서도 지금의 우리처럼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벼락치기 방학숙제에 끙끙대는 자신의 아이들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우리와 같을거라 생각하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때는 디지털 문명이 더욱 더 발달되어 일기장에 '날짜'와 '날씨'를 다르게 적어가는 해프닝은 없을지도 모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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