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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달콤한 휴식

Life Essay/Life Story

by 김현욱 a.k.a. 마루 2010. 2. 2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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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은 날씨가 유난히도 변덕스러웠다. 예상치 못했던 많은 눈이 내리기도 했고 을씨년스런 추위도 감내해야 했다.

따뜻한 봄날이 문턱을 넘어서자 시샘하듯 오늘도 때 아닌 장대비로 대지를 흠뻑 적셔놓고, 함께 데려온 강풍으로 앞마당에 홀로 선 상록수 가지를 정신없이 흔들어 댄다.

작년 늦가을 무렵 갑작스레 이사를 온 단독주택엔 아이들의 자전거와 싱싱카를 보관하기 좋을 만큼 아담한 공간이 대문 앞에 마련되어 있다. 예전 집에선 2층으로 오르는 계단 틈새밖에 공간이 없어서 방치되어 비도 맞고 뜨거운 여름 태양 볕에 달굼질도 당하는 서러움도 겪었야 했던 싱싱이와 두발이지만, 이곳에선 넓진 않아도 비를 피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은 얻은 셈이다.

갓 뽑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며, 만물에 생명이 있고 저 녀석들도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오늘 같은 달콤한 휴식에 무슨 이야길 나눌까? 문뜩 엉뚱스런 상상에 젖어본다.

아우인 싱싱이가 형인 두발이에게 간만의 달콤한 휴식이 벅찬 듯 말한다.

"형아! 비가 오니 이렇게 단둘이 함께 있을 수 있어 너무 좋다. 그치?"

곁에서 빗줄기 사이로 지난 시절 화려한 질주를 되새기며 단꿈에 젖어있던 두발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한다.

"싱싱아! 그렇게 좋으냐? 나도 좋다."

하지만, 이렇게 달콤한 휴식도 그렇게 길지는 않을 거야. 곧 새싹이 돋아나는 화창하고 따스한 봄날이 오면 너와 나는 온 동네를 열심히 달려야 하거던.

그러니 지금 이 짧고 달콤한 휴식을 맘껏 즐겨 보렴."

늦겨울 단비를 피하며 아담한 차고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이 참 애정스러워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커피 향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차 잔을 내려 놓으며, 싱싱이와 두발이에게 나즈막히 독백을 날린다.

"햇살 좋은 날이면 너희 둘을 두 발 삼아 온 동네를 씽씽 누비고 다닐 꼬마대장이 지금은 컴퓨터 게임에 빠져서 정신이 없단다. ^^ 짧지만 마음껏 비오는 날의 휴식을 즐겨보렴......,

봄날이 오면 아빠가 느슨해진 볼트도 조여주고, 녹슨 곳도 깨끗하게 닦아 기름칠도 듬뿍 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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