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게 배달된 낯설은 책 한권 '런던 디자인 산책'. 무광의 블랙컬러 표지에 영국 디자인 클랙시 기념우표가 그리드에 맞춰 단아하게 인쇄된 이 책은 블랙&화이트의 대비 속에 무거움 보다는 담백하고 차분한 첫 인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책을 받아 든 순간, 단 세시간 만에 마지막 책장을 덮을 만큼 숨가쁘게 읽어 내리며 나도 모르게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나는 지난 10여년을 넘게 디자인을 사랑하고 디자인에 미쳐 살아왔다. 그리고 중년을 넘어 이제는 또 다른 디자인 세계를 경험하고 영감을 얻기 위해 더 넓은 세상으로 디자인 투어를 떠나는 것을 삶의 큰 계획으로 삼고 살아간다.

이런 나에게 건내어 진 런던 디자인 산책은 평범한 도시 디자인 투어 가이드에 지나지 않을거란 선입견을 갖게 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을 법이다. 하지만 책 표지를 넘기고 몇 장을 넘어가는 순간, 마치 해머로 머리를 세게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며 저지와(井底之蛙)와 같은 생각을 부끄럽게 만들어 버렸다.

런던디자인 산책의 저자인 김지원 님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모닝글로리 디자인 연구소 팀장을 지냈고 영국 런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현재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서 문화상품개발팀장으로 있으며 유학생활동안 디자이너로써 바로 본 런던의 디자인을 감성적이면서도 소박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책 제목만 보면 디자인 투어를 위한 가이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한 장 두 장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런 관점이나 생각들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마치 책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이 어느 새 런던의 골목길 한 귀퉁이를 그녀와 함께 산책하며 피부로 느끼고 함께 호흡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책은 눈으로 활자를 읽기에 급급한 일반적인 책들과 달리 곳곳에 스토리와 연결된 이미지를 통해 가슴으로 읽어가는 것 더욱 큰 감성의 양분을 자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번쯤 영국 런던을 다녀 온 사람들은 물론, 아직 그곳에 가보지 못했지만 인터넷이나 매체를 통해 접했던 사람들에게 런던 그리고 영국의 디자인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키는 묘한 마력을 발산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저자인 김지원 그녀의 감성 메시지는 지금까지 읽어 본 디자인 관련 책들에서 느낄 수 있는 부드럽고 달콤한 느낌으로 마치 도시를 애틋하게 사랑한 연인이 쉴새없이 주고받는 러브레터를 훔쳐보고 있는 것 같다.

'런던 디자인 산책', 아직까지 내가 알 지 못했던 그리고 앞으로 알아 나가야 할 미지의 공간 또는 흥미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한 없이 부추기는 촉매제가 되었다. 눈으로 봐 온 것이 전부가 아닌 깊은 곳에 감추어진 본질을 들여다 보게 하면서 한없이 경화되어 가는 디자인 감성을 한결 부드럽고 유연하게 풀어 주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디자인 투어를 떠나는 사람들은 명소나 매체를 통해 이미 접했던 유명한 장소들을 전전긍긍하며 인증샷을 남기기 급급한 여행계획을 세우기 십상인데, 그들에게 진정한 여행은 산책이고 렌즈에 담고 발도장을 찍는 것보다 그것들과 함께 융화되어 호흡하며 피부로 느끼는 것이 가장 보람되고 오래동안 기억 속에 남게 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런던 디자인 산책은 크게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에서는 오래된 것의 가치를 / 2장에서는 인간과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인 철학을 / 3장에서는 잠들지 않는 디자인의 도시 런던을 감성적 스토리로 풀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책갈피를 끼우거나 북마크 표시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런던 디자인 산책은 나도 모르는 새 유난히도 형형색색의 포스트잇 플래그로 북마크를 해 놓았음을 다 읽은 후에야 알 만큼 런던 디자인 산책은 신선한 영감과 강한 인상을 남기는 스토리를 담고 있었다.

이 짧은 서평을 통해 책 속에 흐르는 디자인 감성과 지성을 많은 분들과 교감하긴에 역부족이라는 걸 안다. 독자마다 느끼는 감성은 분명 다를 것이고 다른 측면에서는 너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고 핀잔을 줄 지도 모르지만 솔직한 마음은 나 자신에겐 시기적절하게 진한 감성자극과 함께 여장을 서둘러 꾸려야 한다는 재촉의 속삭임이 귀전에 쟁쟁거리게 했던 까닭이다.


만약, 앞으로 떠날 디자인 투어에 앞서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앞서 언급했듯이 유명한 명소들을 애써 찾아다니며 아이쇼핑 하듯 도시를 누비거나 겉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 그리고 순간적으로 눈에 띄는 무명의 오브제들을 한가득 렌즈속에 담아 왔을 것이다. 하지만 런던 디자인 산책을 읽은 지금, 나는 디자인 투어 플랜을 전면 수정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빠르게 많은 것을 담아냄이 아니라 느리게 적은 것을 깊숙히 파고들어 함께 호흡하고 느끼고 오는 것으로....

나는 말하고 싶다. 진정한 디자인은 특정 계층을 위한 것도 아니고 그들만의 전유물도 아니라는 것을,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추앙받는 윌리엄 모리스의 생각처럼 디자인과 예술이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며 위대한 한 개인이 누리는 업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에 깊이 공감하며 디자인을 사랑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삶과 생활 그 자체가 디자인의 근간이 되어 공유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기원하며 디자이너들에게 런던 디자인 산책을 손에 잡기를 권해 본다.


런던디자인산책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디자인/색채
지은이 김지원 (나무수, 2012년)
상세보기


※글에 대한 여러분 의견을 남겨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1. 2012.03.09 1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 남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