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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아저씨, 생애 첫 파마하러 미장원 가던 날

Life Essay/Life Story

by 김현욱 a.k.a. 마루 2008. 1. 1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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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유행한 핑클파마 못해본 내 인생 마흔 살 되던 해 파마를 해보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일까? 갑자기 심경의 큰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가정에 불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작년 후반부터 머리를 기르고 싶었고 드라마에 나오는 인기 탤런트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바람결에 흩날리는 웨이브진 머릿결을 탐내며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가리 늦게 무슨 심사인지 폼생폼사를 꿈꾸는 철부지도 아닐 진데, 헤비메탈 록커나 고독한 아티스트처럼 유난을 떠는지 그 꿍꿍이 속내를 자신도 모를 까닭이다.

타고난 머릿결이 약간 반곱실 스타일이라 굳이 파머를 하지 않더라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아침저녁으로 머리를 감고나면 어정쩡하게 휘감기는 뒷머리의 곱실거림은 거의 이의정의 번개머리랑 사돈을 맺어도 무난할 지경이었다.

작년 연말 이발소를 즐겨 찾는 마흔 살 아저씨는 아내를 앞세우고 내심 기대 반, 설렘 반 심정으로 아내가 자주 이용하는 미용실로 발걸음을 옮겼고, 젊은 언니 형아들에게 유행하는 ‘사키 컷’ 이라는 걸 한 번 해보려고 상상불허의 밑그림을 가슴에 품고 머리를 들이댔다.

하지만, 헤어 디자이너는 “오호~ 노~ 헤드 구조상 ‘사키 컷’을 하기엔 아직 머리가 짧고 반곱실이라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절망적인 멘트를 날렸었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말이 “쪼메 더 길러서 파마 한 번 살짝 해주면 아주 멋있을 것 같다.” 라는 다소 생뚱맞으면서도 희망적인 어드바이스에 “정말 그러려나?” 내심 기대를 걸어 보기도 했다.

그리고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고 미용사의 충고에 “시키면 시킨 대로 한다.”고 머리는 더 길어져 자고 일어나면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한 마디로 가관일색 이었다. 평소 같으면 당장 이발소로 뛰어가서 짧고 산뜻하게 잘라버리고 남을 심산이지만 지금까지 참고 버텨온 시간이 아까웠던 까닭일까? 딸아이의 헤어밴드, 곱창밴드까지 동원하면서 극한의 인내력을 발휘하기도 했었다.

드디어, 생애 첫 파마를 하기위해 미장원으로 가는 날이다. 다른 손님이 많을 까봐 미리 전화로 예약하라고 한 뒤 벌집 쑤셔놓은 번개머리를 드라이기로 약간 정리정돈 시킨 다음, 아내를 앞세우고 미장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장원에 들어설 때는 주저함이 없었는데 막상 파마스타일을 고르는 과정에서 “그냥 커트만 하고 말까?” 주저하기도 했다.

잠시 동안 아내와 헤어 디자이너가 상의를 하더니 최소한 소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파마를 하기로 결정하고 손질에 들어갔다. 일단 내 의중은 여기서 땡~ 어떤 모양새의 파머가 나올지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파마를 하는 동안 파마 도구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인지 머리 밑이 따끈따끈 겨울날씨에는 안성맞춤 이였다.
  
요즘은 도구들이 좋아져 꽤 빠른 시간 안에 파머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남자 파머는 1시간 조금 넘어서서 다 끝난다고 말했고 여성 파머는 시간은 보통 2~3시간 정도 걸린다고 말을 이어면서 여자들 미장원 가서 늦게 온다고 엉뚱한 오해하면 안 된다는 말도 함께 보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드디어 파머시간 끝을 알리는 차임벨이 울리고 마흔 살 생애 첫 파머, 그 기대와 설렘 속에 거울을 바라보라는데 선뜻 고개를 돌리기는 좀 그랬던 탓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궁금하기도 했지만 상상외의 모습을 보게 될까 걱정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고개를 돌리는 순간, “헉!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무한도전에 나오는 정준하의 뽀글이 파마도 아니고, 노홍철이 지난여름에 선보였던 오리지널 시골 할매 뽀글파마는 더 더욱 아니라 다행이지만 왠지 어색해 보이고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당근 유명 스타들처럼 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살짝 웨이브진 멋진 파마 헤어스타일에 대한 기대와 환상은 이미 물 건너가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거금을 들여 신경 써서 말았는데 다시 풀자니 아깝고 한 이불 속에서 13년을 살아온 아내가 멋지다는 말에 일단은 참아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미용사들이 “3일 정도 지나면 자연스런 웨이브로 풀어진다.”는 말에 심적인 위안을 삼으며 컴백 홈을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동네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주위의 눈들을 의식하면서 무척이나 멋쩍었다. 마치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ㅋㅋ.

짜잔~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난생 처음 예기치 못한 헤어스타일 변화를 시도한 아빠의 생애 첫 파마 헤어스타일을 본 아이들은 배를 잡고 웃다가도 연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만화 속 주인공 OO같다"는 말로 놀려대기도 했고 막둥이 아들 녀석은 자기도 미장원 데려가서 파마 시켜달라고 조르는걸 보니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가 보다. 다행스럽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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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 몰래 틈틈이 거울을 쳐다보니 “어찌 보면 개성이 돋보여 멋있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건들건들 동네 양아치 헤어스타일 같기도 했다. 밤늦게 ‘뉴하트’를 보다보니 내 헤어스타일이 연상되는 탤런트의 모습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외모 빼고 눈앞에 보이는 스타일로 따지다면 ‘뉴하트’에 나오는 지성의 헤어스타일을 99%로 닮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차마 사진까지 올려서 확인 시켜주기는 부담백배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작정하고 파머를 한 자신도 적응이 안 되는데 평소 모습이 각인된 사무실 식구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솔직히 아침 출근길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오피스텔 주차장에서부터 맞닥트릴 경비 아저씨부터 편의점, 세탁소 아줌마, 아저씨까지 모두 한마디씩 던질 것 같은데……. 아침 출근 길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질련지 심히 걱정이 앞설 뿐이다.

그래도 학창시절 한동안 유행했던 핑클파마도 못해보고 살아온 지금. 나이 마흔에 접어들면서 생애 첫 파머를 해 보았다는데 큰 의미를 둔다면 “죽는 날까지 미장원가서 파머 한 번 못해 봤단 후회는 하지 않아도 되겠지.”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위안을 던지기도 한다.

이렇듯 인생의 절반의 고개를 넘어서고 있는 88세대의 이유 없는 변신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 했었다. 설령 기대 이하, 상상불허의 헤어스타일로 보는 이의 시력을 어지럽게 만들었을지언정 그것은 무죄가 아닐까?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올 때 어느 정도 동공이 초점을 맞출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듯이……. 나이 마흔에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는 첫 변화의 도전을 성공했다는 것에 또 다른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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